쇼핑·결제·환전…생활에 침투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은행망이 없어도 인터넷만 연결되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시스템이 전 세계 통화 흐름을 뒤흔들고 있다. 복잡한 결제 절차, 높은 수수료 등 은행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한국으로선 통화 주권 훼손, 자본 유출 등 걱정거리가 많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과 부채 증가 우려 등이 제기된다. 이 신종 통화는 과연 사회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정부와 암호화폐 업계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고,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스테이블코인은 달러·국채·예금 등을 담보로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만든 암호화폐다.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의 단점을 보완해 등장했다.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지난해 테더·서클 등 스테이블코인 연간 송금액은 총 27조6000억 달러(약 3경8400조원)로, 글로벌 신용카드인 ‘비자(Visa)’와 ‘마스터카드(Mastercard)’의 연 거래량을 넘어섰다. 송금과 상품 결제 등 일상에서의 사용도 증가세다. 코인ATM레이더에 따르면 전 세계 암호화폐 ATM 수는 2014년 단 10대에 불과했지만, 8월 24일 기준 3만9266대로 급증했다. 한국에서 암호화폐 ATM을 개발해 보급 중인 다윈KS의 이종명 대표는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암호화폐 ATM 보급을 시작했을 때는 한 달에 12건 사용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하루에 23건씩 쓴다. ATM 보급 대수도 앞으로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선 스테이블코인이 생활 경제 영역에 침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한국의 외국환 규제와 편의성을 꼽는다. 외국인이 국내에 미화 1만 달러(약 1380만원)가 넘는 외화를 들여오려면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 환전소에서도 하루 2000달러(약 276만원)를 초과하는 외화는 환전할 수 없다. 송금도 은행 간 국제 송금망(SWIFT)을 이용하면 23개 중개 은행을 거쳐 평균 23일이 소요되고 수수료도 5~7% 발생한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 아무리 늦어도 1시간 이내, 수수료도 0.1%대에서 송금할 수 있다. 가격대가 있는 성형·피부미용 등 의료 서비스나 초고가 브랜드 상품 등을 국내에서 구매할 때는 별도 규제가 없는 스테이블코인으로 송금하는 게 간편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시한의사협회 등에선 스테이블코인 결제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서울 강남 소재 라이안성형외과 최상문 대표원장은 “가슴 성형수술을 마친 외국인 환자가 스테이블코인·비트코인 등으로 결제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며 “시대가 변할수록 이런 결제 수요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확산 중이다. 중심에 선 것은 핀테크·블록체인 기업과 은행·카드사 등 금융회사들이다. 미국의 종합 결제회사 스트라이프는 지난 5월 비자 결제 망이 깔린 곳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쓸 수 있는 카드를 출시했다. 미국의 핀테크 기업 페이팔은 직접 스테이블코인(PYUSD)을 발행해 사용자 간 수수료 없는 송금 서비스를 도입했다. 홍콩의 핀테크 기업 리닷페이는 음식점·편의점 등 신용카드 망이 깔린 곳이면 어디든 쓸 수 있는 충전식 가상 선불카드를 개발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한국은행 등 정부 기관이 통화 주권 훼손, 국내 자본 유출, 불법 자금 거래 확산 등을 이유로 스테이블코인 활용에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정부로선 이미 확산 중인 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테더·서클 등 해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한국 정부가 규제할 방법은 없다”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사용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관련 생태계를 조성한 뒤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2025.08.25











